여호와의 증인의 가르침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1961년에 신세계역 성경을 출판하였습니다. 그들은 세계에서 원어에 가장 가까운 번역 성경은 그들이 번역한 “신세계역” 성경이라고 주장합니다. 과연 여호와의 증인이 주장하는 대로 신세계역 성경이 원어에 가장 가까운 번역인지를 확인하여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에 자신들의 말을 더합니다. 여기에서 다루는 언급되는 대부분의 성경구절들은 이미 앞에서 다루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성경번역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이미 다룬 여러 구절들을 한 곳으로 모았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입니다.”(디모데후서 3장 16절) 구약은 히브리어로 기록이 되었고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구약 39권을 성령님이 쓰셨고 정확 무오합니다. 신약 27권도 성령님이 쓰셨고 또한 오류가 없는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사람이 임의로 더하고 빼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완벽한 성경 말씀에 사람이 임의적으로 더하고 빼는 것은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신명기 4장 2절(개역)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요한계시록 22장 18절-19절(신세계역) “18. 나는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한다. 누구든지 이것에 더하면, 하느님께서 그에게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더하실 것이요, 19. 누구든지 이 예언의 두루마리의 말씀에서 무엇이든 빼면, 하느님께서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것들 곧 생명나무들과 거룩한 도시에서 그의 몫을 빼실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신세계역 신약성경에 “여호와”란 단어를 237번 삽입하였습니다. 그러나 27권의 신약 헬라어 원어성경에는 한 번도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가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히브리어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은 신약을 번역하면서 여호와란 단어를 자신의 임의대로 237번이나 삽입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주 큰 죄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사도행전 7장 59절-60절(신세계역) “59. 그리고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고 있을 때에 그는 ‘주 예수여,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하고 간청하여 말하였다. 60. 그리고 나서 무릎을 꿇고 강한 음성으로 외쳤다. ‘여호와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그는 이 말을 하고 죽어 잠들었다.” 사도행전 7장 59절-60절(개역개정)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사도행전 7장 60절(헬라어) θεὶς δὲ τὰ γόνατα ἔκραξεν φωνῇ μεγάλῃ· κύριε(큐리에, Lord, 주), μὴ στήσῃς αὐτοῖς ταύτην τὴν ἁμαρτίαν. καὶ τοῦτο εἰπὼν ἐκοιμήθη. 사도행전 7장 59절-60절은 교회의 첫 순교자인 스데반 집사의 기도입니다. 59절에 “주 예수여, 제 영을 받아주십시오”하고 기도합니다. 60절에도 예수님께 59절에 이어서 기도를 합니다. 60절을 헬라어 원어로 보면 κύριε(큐리에, Lord, 주)로 나옵니다. 이 말씀은 “주”란 뜻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은 자신들의 임의로 κύριε(주)를 대신하여 “여호와”라는 단어를 삽입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 의도는 스데반이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 59절에 스데반이 예수님께 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그 기도의 대상을 바꾸어서 60절에는 여호와 하나님께 한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은 59절에도 예수님께 기도한 것이고 60절도 59절을 바로 이어서 예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렇지요? 또 한 군데를 보도록 합시다. 로마서 10장 13절에도 “여호와”를 자신들의 임의대로 삽입을 하였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신세계역)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개역개정)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장 13절(헬라어) πᾶς γὰρ ὃς ἂν ἐπικαλέσηται τὸ ὄνομα κυρίου[Lord, 주] σωθήσεται.* 먼저 워치타워에서는 로마서 10장 13절의 해석을 1980년에 바꾼 것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이 이야기는 워치타워는 1978년 이전에는 로마서 10장 13절에 나온 “주”를 예수님으로 해석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증인의 시작이 1870년이라면 108년 동안 로마서 10장 13절을 예수님을 뜻한다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980년부터 “여호와”로 바꾸었습니다. 1978년 로마서 10장 13절은 『예수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1980년 로마서 10장 13절은 『여호와』를 뜻하는 것입니다. Romans 10:13 is referring to Jesus. WT 5. 1. 1978, p. 12 Romans 10:13 is referring to Jehovah. WT 2. 1. 1980, p. 16 신세계역 번역에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 하고 번역을 하였지만 사실상 신약에는 한 번도 히브리 이름인 “여호와 JEHOVAH” 를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5000천개 이상의 헬라어 사본에서도 한 번도 “여호와”란 단어가 사용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렇다면 왜 신세계역 신약성경에는 “여호와”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입니까? 여호와의 증인이 신약에 237번 “여호와”를 삽입을 하였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도 원어에는 없는 "여호와" 라는 단어를 그들 임의로 삽입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1870년에서 1980년까지 110년 동안 로마서 10장 13절을 예수님을 뜻한다고 가르쳤던 것같이 로마서 10장 13절은 예수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3절을 이해하려면 10장 9절부터 전체의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9절부터 보겠습니다. 9절은 누구에 대한 말씀입니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여기 9절은 예수님이 대한 말씀입니다. 10절은 누구에 대한 말씀일까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9절에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에 이어서 10절에 “예수를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 문맥상 9절에도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이고 10절에도 연이여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이지요. 11절을 보겠습니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1절의 말씀은 이사야 28장 16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사야 28장 16절(개역)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여기서 말씀은 시온의 기초 돌은 예수님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그렇지요? 이 말씀은 또한 로마서 9장 33절에도 사도바울이 인용을 하였습니다. 로마서 9장 33절(개역)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도 역시 “부딪히는 돌”은 예수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에서 “저”는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요? 당연히 예수님을 뜻하는 것입니다. 12절을 봅시다. 여기서 주는 누구일까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바울은 9절에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12절에는 “… 한 주께서…”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주” 12절에도 “한 주”는 예수님을 의미하시는 것입니다.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서 …”에서 “저”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을 봅니다. 여기에는 바울이 모든 사람과 하나 되라고 말씀하면서 여기에서도 주를 언급합니다. 에베소서 4장 4절-6절(개역) “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 하나님도 하니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이제 로마서 10장 13절(개역)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9절도 예수님에 대하여, 10절도 예수님 대하여, 11절도 예수님에 대하여, 12절도 예수님에 대한 기록입니다. 14절에 “믿지 아니하는 이를”라고 했는데 누구를 말씀하고 있나요? 당연히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그럼 봅시다. 9절, 10절, 11절, 12절, 그리고 14절 모두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13절은 누구에 대한 말씀일까요? 당연히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지요. 9절에서 12절까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13절에 가서는 “여호와”에 대하여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맥으로 볼 때에 왼쪽의 개역개정 번역이 맞는 것 같습니까? 아니면 신세계역이 맞는 것 같습니까? 개역개정 성경 (위는 개역성경이고 아래는 신세계입니다.) 신세계역 성경 9절: 예수님 9절: 예수님 10절: 예수님 10절: 예수님 11절: 예수님 11절: 예수님 12절: 예수님 12절: 예수님 13절: 예수님 13절: 여호와 하나님 14절: 예수님 14절: 예수님 당연히 신세계역이 틀리고 개역개정을 비롯한 모든 기독교 번역이 옳은 것이지요. 다시 말씀 드립니다. 전 세계의 어떤 성경 번역도 로마서 10장 13절을 “주”가 아닌 “여호와”로 번역한 성경은 없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여기서도 헬라어 원어에 자신들의 말을 임의적으로 첨부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골로새서 1장 15절-17절 번역에서도 헬라어 원어에 없는 단어 “다른”을 네 번이나 삽입하였습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17절(신세계역) “15. 그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이며, 모든 창조물 가운데 처음 나신 분이십니다. 16. 다른 모든 것,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왕좌들이든 주권들이든 정부들이든 권위들이든, 그에 의하여 하늘과 땅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그를 통하여 그리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17. 또한 그는 다른 모든 것보다 먼저 계시고, 그에 의하여 다른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17절(개역개정)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이제 아래에 Interlinear Bible(인터리니어 성경)을 보세요. 헬라어로 만물은 “πάντα”(판타)입니다. 개역성경은 성경 헬라어 성경 그대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만물(all things)이 예수님에 의하여 창조 되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세계역에서는 “πάντα”(판타)를 만물이 아닌 “다른 모든 것”으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위에 여호와의 증인이 쓰는 인터리니어에서도 보듯이 “πάντα” (판타)를 모든 것(all things)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은 신세계역에 헬라어 원어에는 없는 “다른”이란 단어를 네 번이나 삽입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여호와의 증인은 πάντα(판타)를 “만물”이 아닌 “다른 모든 것”으로 번역을 해야 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교리인 예수님이 피조물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성경을 바꾼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먼저 만드셨고(15절), 다른 모든 것은 예수님이 만들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피조물이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πάντα(판타)를 “다른 모든 것”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 1장에서 우리에게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은 우주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을 임의로 삭제하기도 합니다. 모세는 그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명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신명기 4:2) 이 말씀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더하거나 빼지 말고 그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은 위에서 보듯이 하나님 말씀에 그들의 말을 더 삽입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서 삭제하기도 합니다. 참으로 악한 행동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을 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개역)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한복음 14장 14절(신세계역) “무엇이든지 여러분이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그것을 해주겠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4절(헬라어) ἐάν τι αἰτήσητέ με ἐν τῷ ὀνόματί μου tauto ποιήσω. 여기서 보듯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합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예수님은 누구에게 기도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헬라어 원문에는 있는 “με”(메, 내게)를 신세계역 한글성경에서는 삭제했습니다. 그러면 왜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웨스트카트-홀트 성경(Westcott and Hort Interlinear Bible) 사본에도 있는 “με”(내게)를 신세계역 한글 성경은 번역하면서 삭제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워치 타워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 없기에 헬라어 원어에 있는 단어 “με”(내게)를 번역하지 않은 것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헬라어 요한복음 사본을 파피루스(Papyrus) 66이라고 하는데 A.D. 125년에 만들어졌고, 그 다음 오래된 사본이 파피루스 75라 하는데 이 사본은 A.D. 175-225년 사이에 쓰여 졌습니다. 가장 오래된 이 두 헬라서 성경 사본에 “με”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증인이 쓰는 Westcott and Hort 성경사본은 4세기경에 기록된 것인데 이 사본에도 “με”가 있습니다. 조금 전에도 보았듯이 성령이 충만한 스데반 집사는 사도행전 7장 59절-60절에 예수님께 기도를 합니다. 스데반은 예수님께 구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장 59절-60절(개역개정)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예수님이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 번역을 왜곡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에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또 더 나아가 성경을 왜곡하여 번역을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개역)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장 1절(신세계역) “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이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신이셨다.” 요한복음 1장 1절(영어 신세계역) In the beginning was the Word, and the Word was with God, and the Word was a god. 요한복음 1장 1절(Westcott and Hort 1881) ΕΝ ΑΡΧΗ ἦν ὁ λόγος, καὶ ὁ λόγος ἦν πρὸς τὸν θεόν, καὶ θεὸς ἦν ὁ λόγος. 요한 1장 1절을 헬라어로 보면 하나님이란 단어가 θεόν(테온)과 θεὸς(테오스)가 두 번 나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첫 번째 하나님은 관사 τὸν θεόν(톤 테온)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God)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고 두 번째 나오는 하나님 θεὸς(테오스)는 관사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닌 “신”(god)으로 번역하는 것이 맞는다고 주장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더 나아가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므로 하나님과 “또 다른”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이 옳은지 문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약성경 전체를 보면 “θεὸς”(테오스)로 쓰인 단어 앞에 관사가 없는 경우는 282번 나옵니다. 그중에 여호와의 증인은 “θεὸς”(테오스) 앞에 관사가 없기 때문에 “a god”, “god”, “gods”, 또는 “godly”로 번역한 것은 단지 6%인 16번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 16번을 제외한 266번은 “θεὸς”(테오스) 앞에 관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god”(신)이 아닌 “God”(하나님)으로 번역을 하였을까요? 왜냐하면, 그렇게 번역을 하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인가?”를 참조하세요.] 여호와의 증인이 인용한 학자들 그러면 이번에는 여호와의 증인이 자신들의 번역의 정당성을 증명하기 위하여 인용한 학자들을 살펴보도록 합시다(성경을 사용하여 추리함, 2002년판). 이 장에서는 맨틀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Dr. Julius R. Mantley(율리어스 맨틀리) 이분은 “A Manual Grammar of the Greek New Testament”를 쓰신 헬라어 학자 이십니다. Dr. Mantley가 1974년 7월 11일에 워치타워에게 쓴 글을 읽어 볼까요? 맨틀리의 편지를 요약하겠습니다. “당신들은 나의 글을 문맥에서 벗어나게 인용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을 당신들처럼 번역하는 것은 신학적이지도 않고 이치에 맞지도 않습니다. 콜웰과 하너는 그들의 글에 요한복음 1장 1절을 “a god(신)”으로 번역을 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합니다. “a god”으로 번역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오직 여호와의 증인 뿐인 것 같습니다. 99%의 학자들이 “a god” 으로 번역하는 것을 부정합니다.” 또한 맨틀리는 워치타워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였습니다. 아래의 글도 맨틀리가 썼습니다. “내가 믿기로는 다른 사람을 속여서 영원히 잃게 하는 것은 엄청난 잘못입니다. 헬라어를 알고 신약을 번역한 99%의 학자들은 여호와의 증인과 동의합니다.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에게 잘못 인도함을 받아 지옥에 가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8장 58절에서도 성경을 왜곡하여 번역하였습니다. 요한복음 8장 58절(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요한복음 8장 58절(NIV) "Very truly I tell you," Jesus answered, "before Abraham was born, I am!" 요한복음 8장 58절(영어 신세계역) Jesus said to them, “Most truly I say to you, before Abraham came into existence, I have been. 요한복음 8장 58절(Westcott and Hort 1881) εἶπεν αὐτοῖς Ἰησοῦς Ἀμὴν ἀμὴν λέγω ὑμῖν, πρὶν Ἀβραὰμ γενέσθαι ἐγὼ εἰμί. 대다수의 영어 단어의 뿌리는 헬라어입니다. 그러므로 영어와 헬라어는 아주 흡사 합니다. 그런데 한국어는 중국어와는 많이 흡사하지만 헬라어와는 전혀 흡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번역할 때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한국말로 번역을 할 때에 헬라어에 나와 있는 대로 정확하게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요한복음 8장 58절이 그런 경우입니다. 영어로 “I AM”이 헬라어로는 “ἐγὼ εἰμί”(에고 에이미, 나는 ∼이다.)입니다. 이 “I AM”의 근원은 출애굽기 3장 14절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스라엘 자손이 너를 우리에게 보낸 자가 누구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합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하나님께서 “I AM이 보냈다고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70인역 성경에도 출애굽기 3장 14절을 “ἐγὼ εἰμί”(에고 에이미, 나는 ∼이다.)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I AM”이 보냈다고 말하라고 말씀하셨을 때의 뜻은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냈다는 것입니다. 오늘 문맥을 보면 “I AM”의 뜻이 “영원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56절-59절(개역)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5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보고” 즐거워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말합니다, “네가 아직 나이 오십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그러니까 예수님이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여기 58절 번역을 영어 성경에 보면 "before Abraham was born, I am!" 예수님 말씀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영원한 존재 “ἐγὼ εἰμί”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before Abraham was born, I am!"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I AM”이라고 하셨을 때 어떻게 그 말뜻을 이해하였나요? 유대인들의 반응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I AM”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유대인들이 어떻게 반응하였지요? 예수님 말씀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은 “ἐγὼ εἰμί”(에고 에이미, 나는 ∼이다.)의 의미를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I AM”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에게만 쓸 수 있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자신이 “ἐγὼ εἰμί”라고 말하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신성모독 죄를 범하였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여호와의 증인의 신세계역 번역은 일관적이지 않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이 “ἐγὼ εἰμί”(에고 에이미, 나는 ∼이다.)란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예를 들자면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개역)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장 6절(NIV) Jesus answered,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 No one comes to the Father except through me.” 요한복음 14장 6절(Westcott and Hort 1881) λέγει αὐτῷ Ἰησοῦς Ἐγώ εἰμι ἡ ὁδὸς καὶ ἡ ἀλήθεια καὶ ἡ ζωή· οὐδεὶς ἔρχεται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εἰ μὴ δι' ἐμοῦ. 신세계역 성경은 “ἐγὼ εἰμί”를 요한복음의 모든 곳에서 “I AM”으로 번역하였지만 유독 요한복음 8장 58절에서만은 “I have been”으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왜 다른 모든 곳에서는 “I AM”으로 번역을 하고 유독 요한복음 8장 58절에서만 “I have been”으로 번역을 하였을까요? “I AM”과 “I have been”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I AM”은 영원한 존재를 뜻하는 것이고 “I have been”은 영원성을 배제한 단지 아브라함 전에 존재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Gateway Bible』에 나오는 47개의 영어 번역을 보면 모든 동일하게 “I AM”으로 번역을 했지 한 군데도 “I have been”으로 번역을 한 곳이 없습니다.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47개의 모든 성경번역과 다르게 오직 여호와의 증인만 유일하게 “I have been”으로 번역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여호와의 증인이 번역한대로 “I have been”으로 이해를 해서 성경의 맥락을 보도록 합시다. “… before Abraham came into existence, I have been.”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내가 있었습니다.”(요한복음 8:58, 신세계역) 만일 예수님의 뜻이 단순히 아브라함 이전에 예수님이 존재했다는 의미였다면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예수님을 죽이려 했을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I have been”으로 말씀을 하셨다면 듣는 사람들이 “저 사람이 정신이 잘못되었나?”라고 생각할 수는 있어도 신성모독죄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신 이상자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ἐγὼ εἰμί”가 “I have been”의 뜻이었다면 예수님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할 이유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 했던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I have been” 이상이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들은 출애굽기 3장 14절에 나온 것처럼 예수님의 “I AM”의 말씀이 영원성을 의미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신성모독 죄로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도 여호와의 증인의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왜 “I AM”으로 번역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I AM”으로 번역을 하게 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왜곡하더라도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그들의 교리에 맞춰서 번역을 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28절 번역 사도행전 10장 28절(신세계역)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그들 가운데 감독자들로 임명하여, 하느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사신 하느님의 회중을 치게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0장 28절(영어 신세계역 1984) Pay attention to yourselves and to all the flock, among which the holy spirit has appointed you overseers, to shepherd the congregation of God, which he purchased with the blood of his own [Son]. 사도행전 10장 28절(영어 신세계역 2015) Pay attention to yourselves and to all the flock, among which the holy spirit has appointed you overseers, to shepherd the congregation of God, which he purchased with the blood of his own Son. 사도행전 10장 28절(개역개정)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10장 28절(NIV) Keep watch over yourselves and all the flock of which the Holy Spirit has made you overseers. Be shepherds of the church of God, which he bought with his own blood. 이 구절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원어에 없는 “아들의 피로” 라고 번역을 하였는데 원어에 보면 “아들”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우리 개역 성경은 바르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25장을 보면서 여호와의 증인이 성경 번역을 왜곡한 것을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은 예수님의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0절-33절, 41절-46절(개역)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개역개정)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신세계역) “41. 그리고 그는 자기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것입니다. ‘너희 저주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거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개역개정) “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신세계역) “46. 이들은 영원한 끊어짐을 당하고 의로운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헬라어 κόλασις(콜라시스)가 벌(罰 punishment)이 아닌 다른 뜻이 있는지요? 모든 성경사전은 한 군데도 예외 없이 “벌”(罰 punishment)로 뜻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끊어짐”으로 번역한 사전은 하나도 없습니다. “벌”과 “끊어짐”의 뜻은 전혀 같은 뜻이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뜻입니다. 영벌 eternal punishment의 뜻은 벌이 계속 된다는 뜻이지만, 영원한 끊어짐(eternal cut off)은 벌이 끝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어떻게 정반대의 뜻을 가질 수 있습니까? 신약성경에 κόλασις(콜라시스)가 두 번 나옵니다. 마태복음 25장 46절과 요한1서 4장 18절에 나옵니다. 요한1서에는 어떻게 번역이 되었나요? 요한1서 4장 18절(신세계역)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히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우리를 억누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랑 안에서 완전해지지 못한 것입니다.” 요한1서 4장 18절(개역)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LXX(칠십인역)에는 κόλασις(콜라시스)가 모두 15번 나오는데 모두 “형벌”의 뜻으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젠 인터넷에서 있는 성경 번역을 찾아보도록 합시다. Bible Gateway 성경 웹사이트에 영어 성경번역만 50개가 나옵니다(뒤에 참조). 그런데 50개의 번역 중에 한 군데도 “끊어짐”(cut off)으로 번역한 곳은 없습니다. 50개의 영어번역 모두 “형벌”(punishment)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50개의 번역은 모두 “형벌”(punishment)로 번역을 하였는데 왜 유일하게 신세계역만이 “끊어짐”으로 번역하였을까요? 여호와 하나님께서 워치타워에게만 주신 특별한 깨달음이나 계시가 있었나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무슨 의도에서 그렇게 번역을 하였을까요? 그게 올바른 번역일까요? 왜 성경에 나온 그대로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할까요? 성경을 믿는 자라면 우리 이성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성경 그대로의 뜻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요?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사람에게 영벌을 주지 않는다.” 이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사람의 이성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요? 그러면 왜 여호와의 증인은 “끊어짐”으로 번역을 해야만 했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만일 영벌로 번역을 하게 되면 워치타워의 신학과 상충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만일 영벌로 번역을 하게 되면, 그에 대한 결과는 “게엔나”를 죽은 사람이 가는 무덤이 아닌 실질적인 영원한 고통의 장소라고 인정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끊어짐"으로 번역하는 것은 잘못된 번역인 것은 물론 성경을 왜곡한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의도적으로 오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자 그대로의 “게엔나”(eternal punishment)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끊어짐이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영벌(eternal punishment)이 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세계역 번역자들의 자격 신세계역 성경에는 번역자들의 이름이 전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여호와의 증인 조직을 움직이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Governing Body(통치체성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Governing Body에 있던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Raymond Franz(레이몬드 프렌즈)인데 이 분이 신세계역 성경 번역자들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모두 다섯 명이 번역 위원이었는데 다섯 명 모두 번역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섯 명 모두 헬라어 원어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 다섯 명중 네 명이 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인 Frederick Franz(프레드릭 프렌즈)는 대학교 2학년 중퇴자입니다. Frederick Franz(프레드릭 프렌즈)는 대학에서 헬라어를 잠시 공부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번역한 다섯 명중에 어느 한명도 헬라어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신세계역 성경 번역을 한 다섯 명의 이름과 경력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Frederick Franz 대학에서 잠시 헬라어 공부, 대학 2년 중퇴. George Gangas 고졸, 히브리어 헬라어 전혀 공부하지 않음. Henschel Milton 고졸, 히브리어 헬라어 전혀 공부하지 않음. Nathen Knorr 고졸, 히브리어 헬라어 전혀 공부하지 않음. Albert Schroeder 고졸, 히브리어 헬라어 전혀 공부하지 않음. 신세계역 성경 번역자중 하나인 F. W. Franz는 1954년 11월 24일, 25일에 스코트랜드 에딘버그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변호사가 Franz를 상대로 법정 신문에서 한 내용입니다.(요약) “히브리 성경을 잘 아십니까?” “네.” “언어적으로 능통하시겠네요?” “그렇습니다, 성경적인 일을 할 때 씁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다 읽으실 수 있지요?” “네.” “선생님 자신이 히브리어를 읽고 말할 수 있으세요?” “저는 히브리어를 말하지는 못합니다.” “못하세요?” “이 말씀을 히브리어로 번역할 수 있나요?” “어떤 거요?” “창세기 2장 4절입니다.” “이 구절을 말씀하시나요?” “네.” “저는 해보지 않겠습니다.” 1954년 11월 24일과 25일 스코트랜드 에딘버그의 한 세상 법정에 섰던 그 당시 여호와의 증인 부회장인 Franz의 성경 원어 실력이 세상 만인 앞에서 드러났습니다. 이 날은 여호와의 증인과 Franz가 세상의 만인 앞에서 수치를 당한 날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위의 기록은 기독교에서 여호와의 증인을 근거없이 모함하기 위하여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위의 내용은 기독교회와 관련이 없는 스코트랜드 지방 신문인 Scottish Daily Express 기록된 내용입니다. 한 번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The Walsh Case: report on The Pursuer’s Proof Trial; Scottish Daily Express, November 24, 1954: F. W. Franz, vice절-president of the Watchtower organization. 결론 여호와의 증인은 신세계역 번역이 가장 원어에 가깝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원어와 동떨어진 번역입니다. 자신들의 교리에 맞춰서 성경을 임의대로 번역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해서는 안 되는 잘못을 여호와의 증인이 저지른 것입니다. 더군다나 여호와의 증인의 모든 번역자들은 헬라어를 전혀 배우지 않은 비전문가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번역을 전혀 믿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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